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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심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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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소현세자 인물 소개
심양일기 내용과 의의
선교사 아담 샬과의 만남
부친인 인조의 시기
풀리지 않는 의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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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昭顯世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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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 昭顯世子 ]
인조의 장자. 1625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부인은 강석기의 딸인 민회빈강씨이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삼전도에서 청나라에 항복한 이후,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 돌아와 아버지 인조의 견제로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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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일기
瀋陽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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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일기 [ 瀋陽日記 ]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으로 소현세자(昭顯世子) 일행이 청의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을 때의 상황을 세자시강원에서 정리한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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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일기 [ 瀋陽日記 ]
원본은 필사본으로 10책과 8책의 두 질이 규장각도서에 전해지는데, 10책본은 초서로 쓰여져 있을 뿐만 아니라 지우거나 수정한 부분이 많고 필치와 종이도 각각이다. 이에 비해 8책본은 체재도 정비되었고 해서로 깨끗이 정서된 것으로 보아 원본을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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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일기 [ 瀋陽日記 ]
그 밖에도 몇 개의 초록본이 전해진다. 규장각도서에 있는 ≪봉황성일기 鳳凰城日記≫ 1책은 1642년(인조 20) 10월과 11월의 일기이며, ≪북행일기 北行日記≫ 1책은 1644년 4∼6월의 일기인데 이것들은 원래 10책본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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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일기의 내용
소현세자는 1637년 정월에 인조가 삼전도(三田渡)에서 청에 항복한 뒤 화약의 조건에 의해 2월 8일에 조…(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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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대응 등을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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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양일기의 내용
이 밖에 1640년 임경업(林慶業)의 군대가 징발되어 청에 도착한 것과 그 이후 임경업의 탈출과 청에의 압송, 이해 이후 김상헌(金尙憲)최명길(崔鳴吉) 등의 압송과 석방, 1643년 청태종의 죽음, 1644년 청의 북경 천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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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의와 평가
이 책은 일찍부터 조선의 피침(被侵) 사실을 강조하는 일제 식민주의 사학자들에 의해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심양장계 瀋陽狀啓≫와 더불어 명말 청초 조선의 대중국 외교 관계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님은 물론 당시 동아시아의 경제적 관계에 대한 간접적인 자료들도 풍부히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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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아담 샬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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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아담 샬과의 만남
소현세자는 귀국하기 직전 70일 정도를 북경에 머물렀는데, 그곳에서 독일 출신의 신부인 아담 샬을 만났다. 소현세자는 아담 샬과 친교를 맺으며 그로부터 학술과 종교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아담 샬은 역대 중국에서 외국인으로는 가장 고위직까지 올라간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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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아담 샬과의 만남
세자가 희망하는 대로 서양의 천문학을 알려주고 각종 천주교 서적과 관측기구를 선물로 주었다. 이때 소현세자가 아담 샬로 받은 선물은 천주상지구의천문서 등이었다.
아담 샬은 소현세자를 만나면서 조선에 천주교를 선교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소현세자는 자신이 귀국하면 조선에서 서양과학 서적을 간행하겠다고 약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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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인 인조의 미움을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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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인 인조의 미움을 받다
중원을 차지한 청의 힘을 지켜 본 소현세자는 삼전도의 굴욕만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는 인조와 다른 식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광해군의 외교정책에 반대하여 쿠데타를 일으킨 인조와 서인세력은 소현세자의 태도에 대해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오랜 인질 생활을 마치고 조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