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공포 영화가 공포를 멀찌감치 밀어 버리는 몇몇 예들을 비디오 대여점에서 찾아 본다. 선택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① 유령이 직접 등장한다. ② 음향 효과가 분위기를 압도한다. ③ 누군가, 혹은 무엇인가가 쉴 새 없이 `튀어나온다` ④ 끝에 가서 행복해진다. ⑤ 비디오 테이프 케이스에 `괴기`라는 말이 적혀 있거나 `아름다운`, `슬픈`, `영원한` 등이 적혀 있다. 이런 영화는 일단 이 글에서 제외한다. 본령(本領)에 있는 공포 영화는 집요하게도 공포 그 자체에 관심을 갖는다. 그 공포는 깜짝 놀라는 것이 아니라 억제할 수 없이 두려운 것이다. 예컨대, `비디오 드롬(Video Drome)`(감독 : 데이빗 크로넨버그)은 인간의 육체와 미디어의 이종교합(異種交合 : 서로 다른 종의 뒤섞임)을 다룬다. 케이블 TV를 통해 전해 오는 특정한 전파로 인해 뇌에 모종의 종양이 생긴 주인공은 현실과 가상을 혼동하며, 그 경계를 넘나든다. 배를 갈라 비디오 테이프를 꺼내고, 심지어는 브라운관 속으로 머리가 들어가기도 한다. 사실 우리에게 현실은 `우리 눈에 비친` 현실이다. 뇌의 활동이나 작용이 변화하여 사물을 다르게 보게 될 수도 있다는 가정은 사람마다 서로 다른 현실이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두는 것이다. 게다가 그 현실이 미디어라는 주체가 만들어 놓은 것이라 하면, 이 …(생략)

화가 주제로 삼은 바가 심상치 않다. 그러나 이 영화가 끝까지 추구하는 공포의 본질은 미디어가 가진 가공할 위력에 있지 않다. 비디오에 중독된 케이블 TV 사장 개인의 불운한 종말을 문제삼는 대신에, 그러한 상황을 잡고 있는 카메라가 TV 속으로 들어가 버린 주인공을 화면에 잡는 것으로써 실제로 육체와 미디어의 결합을 기정 사실로 만들어 버린다는 데 있다. 여기서 모든 인간의 환상과 모든 인간의 현실이 다를 바 없어지는 혼란이 벌어진다. 정체성의 혼란은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금기 중의 하나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