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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동기시대 경제생활의 변화상과 군장의 등장이 갖는 사회적 의미
청동기시대 경제생활의 중심은 농업이었다. 이 시기에는 밭에서 보리, 기장, 밀, 콩, 조, 수수 등의 다양한 잡곡을 재배했으며, 특히 벼농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부여 송국리와 같은 유적지에서는 불에 탄 쌀과 볍씨자국 토기가 발견되었고, 논산 마전리와 울산 무거동에서는 청동기시대 논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논은 하천이나 계곡의 물을 막는 간단한 관개시설을 통해 물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조성되었으며, 벼농사의 보급으로 농업 생산이 증가했다. 하지만 당시 주식은 조, 기장, 보리, 밀, 콩 등이었고, 쌀은 잡곡을 보완하는 역할에 그쳤다. 청동기시대 사람들은 풍요로운 농사를 기원하기 위해 바위에 그림을 그렸는데, 울주 반구대와 고령 장기리 알터바위에서 동물 그림과 기하학무늬가 발견되었다. 이들 그림은 사냥과 농사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청동기시대에는 농업의 중심으로 경제생활이 변화하면서 정주와 대규모 취락이 형성되었고, 이전보다 훨씬 긴 정주 기간을 기록했다. 또한 청동기와 목제, 석제 농기구를 사용하여 농사를 더욱 효율적으로 지을 수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