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알 권리와 온정주의가 부딪히는 진료실의 침묵
사회복지 실천의 기본 원칙 중 하나인 `자기결정권`은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을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 이론적으로는 환자에게 진단명을 알리는 것이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배웠으나, 실제 병동에서 마주하는 현실은 교과서처럼 명쾌하지 않아 당혹스러울 때가 많다. 특히 A군처럼 명문대생이거나 사회적 성취 의욕이 강한 청년의 경우, 가족들은 `조현병`이라는 단어가 아이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갈 낙인이 될 것이라며 절규하듯 비밀 유지를 요청한다.
현장에서 관찰한 가족들의 모습은 단순히 정보를 차단하려는 고집쟁이가 아니었다. 그들은 환자가 진실을 마주한 뒤 무너져 내릴까 봐 진심으로 두려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보호자의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의료진이 진단명을 숨기는 순간, 환자는 치료의 주체에서 소외된 객체로 전락하고 만다. `선생님, 저 그냥 스트레스 때문에 잠깐 쉬러 온 거죠`라고 묻는 환자의 맑은 눈을 마주할 때면, 그 정직하지 못한 침묵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깊은 회의감이 들곤 한다. 선행의 원칙을 내세워 환자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행위가 과연 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