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Ⅰ. 정약용의 생애
1. 정약용의 일대
정약용(1762~1836)은 어린 시절 부친을 따라 여러 지역을 옮기며 경사 교육을 받고 과거를 준비하였다. 16세에 이익의 사상을 접하면서 새로운 학문적 자극을 받았고, 이익이 근기 학파의 핵심 인물임을 이해하게 되면서 서울에서 이가환이승훈을 통해 이익의 학문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였다. 1783년 진사 합격 이후 성균관에서 경전을 깊이 연구하였고, 1789년 문과에 급제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정조의 신임을 받으며 예문관검열, 사간원정언, 승지, 경기 암행어사 등 핵심 직책을 두루 경험하였고, 곡산부사와 형조참의 등을 맡아 중앙과 지방 행정을 수행하며 실무적 경륜을 쌓으면서 한강 배다리 준공, 수원성 설계 등 공학적 업적을 남겼다. 신유교난 이후 유배되어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고, 이 기간에 실학사상을 완성하고 많은 제자를 교육하고 다수의 저술을 남겼다. 1818년 풀려난 뒤 고향에서 은거하며 『매씨서평』, 『아언각비』 등을 완성하고, 후기 저술들은 『여유당전서』로 정리되었다.2)2) 정약용-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0549
2. 정약용, 실학자에서 과학기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