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서론
현대 사회는 과학기술과 의학의 발전을 통해 인간의 삶의 질을 비약적으로 향상해왔다.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안전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며, 질병은 점차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무균사회’에 대한 열망은 때로 인간에 대한 이해와 포용을 약화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김재형의 『질병, 낙인: 무균사회와 한센인의 강제격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이 책은 단순히 한센병이라는 질병의 역사적 서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둘러싼 사회적 시선과 제도적 폭력이 어떻게 개인의 삶을 파괴하고 인간의 존엄을 침해했는지를 탐구한다. 저자는 한센병 환자에 대한 강제격리와 낙인의 구조를 해부하며, 사회가 ‘청결’과 ‘위생’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쉽게 타인을 배제하고 통제할 수 있는지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책을 처음 펼쳤을 때, 나는 ‘질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연민이나 두려움 같은 개인적 감정이 먼저 연상되었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한 시선은 훨씬 더 사회적이고 구조적이었다. 질병은 단지 신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만들어낸 권력의 언어이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