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지식의 완결성과 현장의 불완전성 사이의 간극
상황-맥락 교수요목(Situation contextual syllabus)은 학습자가 언어를 사용하게 될 특정한 환경을 미리 예측하여 그에 필요한 언어 형식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둔다. 은행, 공항, 병원 같은 물리적 장소를 설정하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전형적인 대화 패턴을 구조화하는 것이 이론적 핵심이다. 하지만 완벽하게 설계된 교수요목을 들고 실제 현장에 나갔을 때 마주하는 것은 설계자의 의도를 비웃는 불완전한 소음들이다.
교재 속의 대화는 언제나 정중하고 명확한 발음으로 이어지지만, 실제 거리의 언어는 문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잘려 나가거나 주변 소음에 묻히기 일쑤다. 표준적인 상황 설정을 충분히 숙지했다고 믿었는데, 정작 현장에서 원어민의 비속어나 줄임말, 혹은 문법을 파괴한 급박한 요청을 들었을 때 느끼는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론은 `A 상황에서는 B라고 말한다`는 명쾌한 해답을 주지만, 현실은 A-1, A-2와 같은 수많은 변종 상황을 들이밀며 학습자를 마비시킨다. 규격화된 상황 학습이 오히려 예상치 못한 돌발 상황에 대한 유연성을 저해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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