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I. 서론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새하얀 스케치북 앞에 앉아 빳빳한 크레파스 상자를 열 때의 그 설레는 냄새가 여전히 코끝을 스치는 것 같다. 무엇을 그려야 한다는 강박도 없었고,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목적도 없었다. 그저 손이 가는 대로 노란색을 칠하고, 그 위에 다시 파란색을 덧칠하며 초록색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그 단순한 몰입의 시간이 떠오른다. 하지만 요즘의 아이들을 보면 조금 안쓰러운 마음이 앞선다. 아이들의 손에는 크레파스나 붓 대신 매끄러운 태블릿 PC의 화면이 들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색을 구현하고, 틀리면 `뒤로 가기` 버튼 하나로 깨끗하게 지워버릴 수 있는 디지털 환경은 편리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잃어버리는 무언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은 단순히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기술적 훈련이 아니다. 그것은 아이가 자신의 내면을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꺼내어 놓는 아주 원초적이고도 소중한 고백이다. 물감을 엎지르고 손에 묻히며 느끼는 촉각적인 자극, 생각대로 그려지지 않아 속상해하다가도 우연히 만들어진 얼룩에서 새로운 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