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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영화사 개척기
한국영화사 개척기는 1903년 조선총독부의 영화촬영소 설립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한국영화 역사의 시작을 알린다. 당시 최초의 영사회사의 설립과 더불어 초기 영화 제작은 주로 일본인들이 주도하였으며, 조선인 제작자들의 참여는 제한적이었다. 1920년대에는 민족적 정서를 담은 독립영화의 시도들이 등장했으며, 특히 1923년 ‘의리’와 같은 작품이 제작되면서 민족 정체성을 담은 영화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30년대에는 영화 제작이 산업화되기 시작하며, 매년 약 10편 내외의 영화가 제작되었으며 일본의 영향 아래 조선인 감독도 일부 활동했다. 이 시기에는 미술과 연기, 제작기술이 초보 단계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1936년 일본의 검열 체제가 강화되면서 제작이 어려워졌고, 1940년대에는 일제 강점기라는 제약 속에서 제작 활동이 극히 제한적이었는데, 1942년 ‘의열단’의 활동과 옥색 영화를 통해 저항정신을 드러내는 작품들도 잠깐씩 등장했다. 이후 1930년대와 1940년대는 한국 영화사 개척기의 구조적 기반이 마련된 시기로써, 국내 제작자와 관객들의 영화에 대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