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서론
며칠 전 동 행정복지센터 복도 게시판 앞에서 발걸음이 멈춰졌다. ‘가족 교육 신청’ 안내문에 붙은 사진 속 가족은 아빠엄마아들딸이 손을 잡고 웃고 있었다. 낯설지 않은 구도이지만 이상하게 오래 눈에 걸렸다. 내가 자라며 만난 가족의 얼굴은 훨씬 더 다양했기 때문이다. 외할머니와 손주만 사는 집이 있었고, 이혼 후에도 서로 왕래를 이어가는 집도 있었다. 그럼에도 안내문은 여전히 한 장의 사진으로 가족을 설명하려 한다.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오래된 말버릇이 안내문 사이사이에 남아 있는 듯했다. 불편함이 생겼지만 동시에 변화의 조짐도 보였다. 바로 옆 포스터에는 ‘다양한 가족을 위한 상담’이라는 문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 서로 다른 시대가 공존하는 풍경처럼 보였다.
이 글은 그런 모순의 틈에서 『건강가정기본법』을 다시 펼쳐 보는 시도이다. 법률 조문은 보통 시험 문제나 행정 보고서에 나오는 딱딱한 문장으로만 존재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동네의 안내문과 신청서, 프로그램 시간표를 바꾸는 스위치이기도 하다. 그래서 법 조문을 해설하듯 나열하지 않고,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어디에서 멈추는지 생활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