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서론
버스를 기다리다 승강장 유리벽에 붙은 문구를 본 적이 있다. “가정폭력은 범죄이다. 112.” 굵은 글씨 옆에 작게 인쇄된 손바닥 그림이 있었다. 그 순간 머릿속에는 뉴스 화면이 아니라, 새벽 기숙사 복도에서 들리던 낮고 끊기는 울음소리가 먼저 떠올랐다. 문이 열리지는 않았지만 누군가가 문 너머에서 망설이고 있는 느낌이 있었다. 그 장면은 설명하기 어려운 찝찝함을 남긴다. 이웃집에서 가끔 들리던 둔탁한 소음, 친구가 한밤중에 보냈던 “집에 들어가기 싫다”는 짧은 카톡, 편의점 계산대 앞에 붙은 신고 안내 포스터가 한 줄로 이어진다. 가정은 안전해야 한다고 배워왔는데, 일상은 그 당연함을 자주 부순다. 놀람이 먼저 올라오고, 곧바로 불편함이 잇따르고, 마지막에는 무력감이 남는다. 도와야 한다는 마음이 생기지만, 어떻게 해야 피해를 키우지 않을지 확신이 없다.
이 주제를 지금 꺼내는 이유는 거창하지 않다. 사회가 거친 호흡을 할수록 집 안의 공기도 무거워진다. 경기 악화로 소득이 흔들리면 갈등의 불씨가 많아진다. 돌봄 공백이 길어지면 피로가 쌓인다. 주거 밀집 지역에서는 벽이 얇아 소리도 쉽게 새고, 소문도 쉽게 돈다.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