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서론
대학 병원 대기실의 소독약 냄새와 호출음이 섞인 풍경이 먼저 떠오른다. 의자에 앉아 보호자 앱 알림을 확인하면서도 정작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몰라 화면만 만지작거렸던 기억이 있다. 가족을 따라 진료실 앞에서 멍하니 서 있다가 간호사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에야 정신이 드는 때가 있었다. 검사 수치는 또렷했지만 그 숫자가 내 일상에서 무엇을 바꾸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놀람이 먼저 찾아오고 잠깐의 안도가 뒤따르지만 곧바로 당혹이 밀려온다. 치료는 의사가 맡는 일이라고 배웠으나 치료 이후의 삶은 누가 챙기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진단서 한 장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비용 문제가 있다. 진료비와 약값, 비급여 항목이 한꺼번에 청구될 때 카드 한도를 계산하는 손끝이 떨릴 때가 있다. 돌봄의 공백도 있다. 약을 제때 먹도록 챙겨줄 사람이 없고, 병원 침대를 떠나면 계단 없는 집이 없어 퇴원이 두려울 때가 있다. 일자리의 문제도 있다. 병가를 쓰면 소득이 줄고, 계약직이라면 복귀 자체가 불확실할 때가 있다. 주거의 문제도 있다. 집에 난방이 충분하지 않고, 욕실에 손잡이가 없어 재활이 늦어질 때가 있다. 이러한 현실은 의학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