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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빈민법(1601)의 역사적 의의는 무엇이며 현대 사회복지에 미친 영향이 무엇인지 논하시오
중세 말 빈민구제를 위한 사업을 운영하던 수도원이 해산하게 되자 교회 울타리 안에서 자선사업을 통하여 구제를 받을 수 있었던 많은 빈민들이 길거리에 버려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이유로 빈민구제사업은 교회의 자선사업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게 된다. 이에 오늘날 사회복지의 공적부조에 관한 법률의 효시가 된 구빈법(Poor Law)이 제정되게 된다.
엘리자베스 1세 이전까지의 영국은 교회 행정과 국가 행정이 혼합되어 있던 시기였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와서 치안판사가 주체가 되어 국가 행정체계를 확립하고 국가 주도로 구빈행정을 관리하게 된다.
1563년 구빈법은 치안판사에게 최고 임금 결정권을 부여하고 그들의 권한을 강화시키면서 기존 모금업무의 최종책임자를 치안판사가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때부터 국가가 빈민구제에 있어 중심이 되고 서서히 교회행정과 국가행정이 구별되기 시작한다.
헨리 8세부터 엘리자베스 시대에 이르는 성문법들은 일련의 구빈법을 통해 일정한 유형은 확립되어 갔다.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빈민들을 위해 그 지역 주민들이 재정을 내고, 역시 해당 지역에서 구빈제도를 운영한다는 원리와 전통을 확립하였다. 일할 수 없는 사람들(unemployable)에게는 직접 부조를 제공하고 일할 수 있는 자들에게는 근로정책을 실시하는 구빈체계를 확립하였다.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구빈법의 집대성뿐만 아니라, 튜더 시대의 경제 관련 입법들과 노동법, 각종 행정체계의 개편, 식료품 관련법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되어 완성된 종합구빈대책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엘리자베스 구빈법은 종전부터 내려오던 영국의 빈민구호에 관한 법률들을 집대성하여 성문화시킨 것으로 가족과 친족이 부양하지 못하는 빈민을 해당 교구(parish)가 책임을 지고 부양하도록 규정함으로써 교구를 중심으로 한 구제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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