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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비평문 - ‘기생충’
< 어두움을 통해 희망을 >
칸 영화제의 심사위원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기생충>을 “매우 로컬적이면서도 세계적인 영화다”라고 평가했다. 로컬적인 것이 한국의 문화를 뜻한다면, 세계적이다는 것은 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봉준호의 영화에는 모순이 있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살인을 하고 인류를 위해 학살하고 생명을 위해 사람을 때리는 모순. 모두 현실적이면서도 잔인한 모순이다. 영화 <기생충>도 그 모순과 함께 시작된다. <기생충>의 시작은 2시간을 압축했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것을 담고 있다. 낮은 멜로디와 높은 멜로디를 반복 변주하는 오프닝 곡은 영화에 어두움과 희망이 공존하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또한 창문의 햇빛을 벗어나, 어두운 화장실에서 와이파이를 기생하는 기우의 모습은 기택네가 남에게 기생하는 모습을 예고한다. 서로 대립되는 희망과 어두움이 공존하도록 배치하며 한 편의 잔혹동화가 시작된다.
영화의 초반부는 상층민과 하층민의 관계가 눈에 띈다. 박 사장 가족에 기생하며 상층이 되려 애쓰는 기택 가족은 흔히 볼 수 있는 부의 관계이다. 하지만 문광의 초인종 소리와 함께 그들이 관계맺는 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난다. 바로 최하층이다. 최하층의 등장은 하층의 경쟁 상대가 상층이 아닌 최하층임을 알게 한다. 문광의 “같은 불우이웃끼리”라는 말에 분개하지만, 카스텔라 사업을 망한 경험은 하층과 최하층의 동질감을 보여준다. 이외에도 기택 가족이 자본주의에 패배한 것을 스스로 부정하는 대사가 나온다. 그러나 “살면 또 살아지나 이런 데서도”라며 지하실을 무시하는 기택의 말에 “땅 밑에 사는 사람이 또 한둘인가, 반지하까지 치면 더 많지.”라는 근세의 답은, 하층과 최하층 모두 ‘쌔고 쌨으니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대체 가능한 부품이란 점을 나타낸다. 기택네도 상층이 제공한 일자리를 갖게 된 아랫 사람에 불과하단 것이다.
후반부로 갈수록 상층과 하층의 격차를 더 커져간다. …
후반부로 갈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