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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조직협회와 인보관운동
19세기 말 영국에서는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심화로 인한 폐해가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었다. 자유주의 경제방식은 자본가와 노동자 모두 자유롭게 활동한다는 것인데, 이것은 `자본가가 임금노동자를 착취할 수 있는 자유`까지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절대 다수의 임금노동자들이 빈곤 경계로 내몰리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에 19세기 말 빈곤에 대한 경험적이고 실증적인 사회조사가 실시되었는데, 1886년 부스(Booth)는 런던 주민들의 주택, 고용, 임금, 보건 등 포괄적인 생활 상태를 조사한 결과 런던 주민의 30%가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1899년에 라운트리(Rowntree)에 의한 사회조사가 이루어졌는데, 이것의 결과는 빈곤이 개인적 원인이 아니라 사회구조의 요인에 의해서 발생하는 것임을 입증하였고 기존의 구빈법과 사적인 자선활동이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것의 해결점을 찾고자 왕립구빈위원회가 설치되고 이로 인해 1909년 다수파 및 소수파 보고서라는 두 개의 보고서가 제출되었다. 다수파보고서는 자선조직협회의 영향을 받아 구빈자선기금에 대한 서비스 제공의 자율성을 강조하였고, 소수파 보고서는 기존 구빈법의 전면 폐지와 그 대안으로 국가주도의 의료보험과, 의료서비스 그리고 직업안정책을 제시하였다. 결국 개혁적인 소수파 보고서는 무시되고 다수파 보고서가 개혁안으로 채택되었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수파 보고서는 사회보장제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1834년 구빈법의 개정에도 불구하고 노동계층의 빈곤은 해소되지 못한 상태였다. 또한 구빈법의 불만이 고조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박애활동으로 나타났다 1834년 이래 빈민들을 작업장과 기타 공적구빈제도의 가혹한 조치로부터 구원하려는 소망에서 개인이나 단체들이 주도한 자선활동이 증가하고 있었지만 그 영향력은 미미한 것이었다.
그 당시 많은 자선단체나 박애주의자들이 빈민구제…
그 당시 많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