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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빈민법이 왜 공공부조법의 기원인지에 대해 토론하시오
고대에서 중세까지 빈민제도는 원칙적으로 상부상조의 비공식적 제도에 의한 빈민제도가 이루어졌고 국가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에만 관심을 가졌다. 비공식적 제도의 주체는 대체로 가족과 친지 그리고 지역공통체이며 특히 중세에 이르러서는 봉건영주와 교회의 교구 및 수도원을 중심으로 구빈제도가 이루어졌다(Coll, 1973 : 2). 봉건주의가 무너지고 절대왕정시대로 접어들게 되자 봉건영주와 교회가 중심이 되어왔던 빈민제도는 와해되었다. 특히 15-17세기 영국의 절대왕정시대는 면직물 공업을 위한 양모를 공급하기 위해 대규모의 앤클로저(enclosure) 운동이 시작되어 많은 농민은 토지로부터 쫓겨나 빈민으로 전락하여 부랑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 게다가 종교개혁으로 많은 교회의 수도원이 해산되면서 교회를 통해 구제를 받아오던 빈민들도 부랑인으로 길거리엔_내몰렸다 이 시기에 자선대상이었던 노동능력이 없는 빈민뿐만 아니라 노동능력이 있는 빈민도 대량으로 발생하여 사회문제화되었다.
이에 국가의 개입이 불가피하게 되어 빈민을 위한 대책을 수립하기 시작하였다. 빈민법의 전형적인 예는 영국에서 찾을 수 있으며 그 구체적인 사례는 여섯 가지로 나누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영국은 1348-1349년에 발생한 흑사병으로 노동자가 부족하여 임금을 급상승시켰고 이에 대한 대책으로 노동자규제법이 제정되었다. 이 법은 걸식과 부랑을 금지하고 임금 상승을 야기하는 노동력의 이동을 금지하였다. 따라서 이 법은 빈민구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자의 이동을 규제하기 위한 법으로 볼 수 있다.
둘째, 1531년 헨리 8세에 의해 제정된 걸인 ․ 부랑자처벌법은 빈민구제를 위한 영국 최초의 법으로 볼 수 있다. 시장이나 치안판사로 하여금 교구가 책임을 지고 보호해야 할 노인과 무능력한 …
둘째, 1531년 헨리 8세에 의해 제정된 걸인 ․ 부랑자처벌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