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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국의 일본 점령 직후
미국은 태평양 전쟁의 종전이 가까워지면서 소련의 공산주의가 동북아시아로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경계했다. 그 결과는 미국이 일본의 항복 이후 점령지에 대한 정책에서 고스란히 드러났고, 한반도에 대한 전후 점령 정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은 전쟁 이후 동북아시아에서 소련을 견제할 구도를 구상했고, 그 과정에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 추진되었다. 이 조약은 일본을 미국의 대소 동북아 전진기지로 만드는 것에 그 목적이 있었다. 이에 미국의 정책에 따라 일본에 대한 전범 처리 문제, 전후 배상 문제는 최대한 가볍게 전개되었고, 이후 한국의 전쟁 처리 문제에 논쟁을 불러온 원인이 되기도 했다. 미국은 1951년 9월인 전후 6년 만에 일본과 평화조약을 맺었고, 1952년 4월부터 그 조약이 발효되었다. 그 과정에서 38선 이북의 땅을 제외한 남한에 남겨진 일본의 자산은 한국이 요구하는 배상액 4배에 달한다는 내용을 주장하기도 했다(“Comparison of Japanese Assets in Formosa and Korea with Possible Korean and Formosan Claims in Japan,” 24 May 1951, Box 5, Folder “DRF-DR 229”, Reports Relating t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