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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나의 인문학
나의 인문학
나는 자기 전에 꽤 자주 이런 생각을 한다. ‘내게도 언젠가 마지막 숨을 내뱉고 더 이상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하는 순간이 오겠지’ 그럴 때마다 1분 1초가 아깝고 아쉬워서 잠이 오질 않는다. 더욱이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 보면 내 인생이 한낱 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참으로 허무하다. 한 세대만 지나도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었는지조차 모르는 게 인생이라면 그렇게 허무할 수가 없다. 그러면 ‘나란 사람은 이 세상에 왜 온 것이고 존재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이어나갈 수밖에 없다.
나는 무교이다. 창조론은 허구라고 생각한다. 신이 있다면 간절한 내 소원을 매번 이렇게 안 들어줄 수가 없다. 자연스레 다윈의 진화론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다윈의 진화론에 따르면, 나라는 인간이 이 세상에서 태어나서 이렇게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있게 될 확률은 내가 매번 신에게 빌어대는 로또 1등의 확률보다 (계산은 해보지 않았으나) 몇 십억 배 더 기적 같은 확률이다. 왜냐하면 내 할아버지 세대는 6.25라는 전쟁을 겪고도 살아남아서 내가 태어나게 됐을 것이고, 조금 더 올라가보면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을 겪었는데도 내 조상 중 누군가는 그 고난을 이겨내서 목숨을 이어갔을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원나라 침입 중 내 조상은 어찌 저찌 살아남았겠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구석기 시대에도 뱀이나 호랑이로부터 목숨을 부지했으니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가히 기적적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어떤 책임감 같은 것들을 느낀다. 요즘 젊은 세대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 비율이 굉장히 높아지고 있는데, 나라는 사람도 내 생각만 하면 출산을 하지 않는 것이 맞지만 저렇게 어렵게 나까지 이어져 온 유전자를 내 욕심만으로 내팽개치는 게 맞나 싶다. 인문학 얘기를 해야 하는데 갑자기 웬 신세타령인가 싶지만, 나에게 인문학은 이런 식으로 인간의 본 모습을 내 식대로 찾아가는 과정이다.
앞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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