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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산()
김훈/학고재
사학죄인()이 되어 곤장을 맞고 귀양길에 오른 정약전은 뱃길이 끊겨 포구에서 몸을 추스르고, 압송에 나선 장교와 아전과 역졸들은 당연한 듯 주막에서 무전취식과 교접으로 시간을 보내며 뱃길이 다시 열리길 기다린다.
바람 불어 뱃길이 열리던 날 황포 돛은 복어의 배 만큼이나 부풀고 성난 파도는 뱃속에 든 모든 것들을 버리고 가라한다.
뱃길을 잡느려 바닷물의 색깔을 살피느라 쓰라린 눈을 항아리에 담긴 연잎에 고인 이슬로 눈알을 씻는 사공.
사공은 말한다. “높은 파도가 일면 대가리를 파도가 오는 정면으로 돌리고 납작 수그려야 산다”고.
천주교를 학문으로 받아들여 목숨을 부지한 사학죄인과 거대한 파도가 서역으로부터 밀려와 새로운 세상이 열리기를 염원하며 종교로 받아들인 순교자들의 스토리가 긴박하게 흐르고 있다.
조선후기의 공명첩과 고등어 한 마리에 메겨진 세금의 무게와 민초들에게만 적용되던 가혹한 처벌들 그리고 의학이 발달하지 않던 시절 민간에 전해오던 치료방법 등 각종 문헌에 단편적으로 거론되었던 많은 자료들을 한 번에 볼 수 있었고,
마치 고증을 통한 역사에 문장을 덧대어 소설이라기 보단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내용들을 살피며 공권력에 대한 치떨림과 무지몽매한 행동으로 역사의 흐름을 더디게 한 군상들의 모습을 보았다.
신앙의 자유를 갈망했던 황사영은 “발고한 사람이 누구든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거나 처삼촌(정약용,정약전 등)들은 이 세상과 임금에 속할 사람들이었고, 아무리 먼 변방을 헤맨다 하더라도 결국 사직의 언저리에 머물 사람들이었다. 처삼촌들이 황사영과 많은 교인들을 발고한 대가로 매를 덜고 죽임을 면했다 하더라도 황사영은 천주가 그 발고를 배신으로 여기지 말기를 바랐다. 처삼촌은 믿는 자들이 아니었으므로 배신도 없었을 것이었다. 처삼촌들이 처조카를 발고함으로써 서로의 길을 각자 걸어가게 된 것이라고 황사영은 생각했다.”
책을 읽는 동안 떠오르는 생각은 “작금의 현실과 조…
책을 읽는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