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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의 조선상고사를 읽고
단재신채호()는 제국주의의 거센 물결이 우리나라를 휩쓸려고 하는 1880년(고종 17년) 12월8일 충청남도 대덕군 산내면 어암리 도림마을(대전광역시 중구 어남동)에서 유생이던 아버지 신광식과 어머니 밀양박씨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1887년 아버지를 여의고 할아버지 신성우가 사는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로 이사하여 그곳에서 공부하며 성장하였다. 아홉 살에 자치통감을, 열네 살에는 사서삼경을 마쳤다. 1896년에는 진사를 지낸 신승구에게, 1897년에는 할아버지의 동무이자 전 학부대신 신기선의 집을 드나들면서 한학을 익혔으며, 신기선의 추천으로 1898년 가을 성균관에 입교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성균관을 나온 단재는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독립협회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검거되어 투옥되었다. 신기선의 도움으로 풀려난 단재는 1901년 청원군 가덕면 인차리에 문동학교를 세워서 애국계몽운동을 펼쳤으며, 1902년 조소앙 긍과 함께 항일성토문을 지어서 역신 이하영 패거리의 매국 흉계를 규탄하였다. 1905년 성균관 박사가 되었으며, 위암 장지연을 알게 되어 황성신문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06년 황성신문이 폐간되면서 양기탁의 천거로 대한매일신보 논설위원을 활동하면서 자신의 포부를 붓끝으로 나타냈으며, 나랏일의 잘잘못을 통렬히 논하고 기류 소인배들의 망령된 행동을 공박하였다.
그 무렵 사상의 혼탁과 도의의 부패에 분개하던 단재는 나라 역사가 똑바로 서지 못하고, 따라서 민족 정기가 제대로 떨쳐지지 못한데 근본 원인이 있음을 알고 사대주의에 매몰된 예전 역사가들이 기록의 잘못과 가치의 전도, 잘잘못의 착오를 수없이 저질렀음을 파해쳐서 국민사상 개혁과 민족의식 앙양의 선봉이 되었다.
1907년 4월 안창호의 발기로 김구, 노백린, 박은식, 안태국, 양기탁, 유동렬, 이갑, 이강, 이동녕, 이동휘, 전덕기,…
1907년 4월 안창호의 발기로 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