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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중 사씨남정기 독후감
고소설은 근대 이전에 쓰여진 모든 소설을 말한다. 국내 첫 소설은 조선 초 김시습이 쓴 금오신화로 알려져 있지만 고려 시대 소설로 볼 수 있는 작품도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이러한 기존의 작품들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의 소설이 전개될 수 있었다.
17세기 김만중이 쓴 `사씨 남정기`는 후궁 간의 갈등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상생 가정 소설의 한 예이다. 선한 주인공 사씨가 사악한 교씨의 계략에 온갖 고난을 겪다가 결국 지위를 회복하고 교씨가 처벌을 받아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것은 조선시대의 다른 고소설 비슷하다. 다만 소설 집필 당시 김만중의 상황과 실제 인물들을 소설 속 인물들과 대조해 볼 때 `사씨남정기`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소설이라 할 수 있으며, 이 점에서 다른 소설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다. 특히 왕을 겨냥한 글을 보면 『사씨남정기』의 정치적 목적이 더욱 뚜렷이 드러난다.
그러기에 `사씨남정기`는 후궁 간의 갈등을 다룬 가족 소설일 뿐 아니라 당시 정치 상황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독후감에서는 김만중이 `사씨남정기`를 쓸 당시 정치 상황이 어땠는지, `사씨남정기`가 당시 정치 상황과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 등을 알아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김만중의 정치적 입장.
서포 김만중은 당시 조선의 붕당 정치를 이끌었던 서인 가문 출신이다. 증조할아버지 김장생은 서인의 영주인 율곡 이이의 제자로, 어머니는 임진왜란 때 서인의 수령 윤두수의 4대손이다. 김만중의 가족사는 자연스럽게 김만중의 정치적 입지에 영향을 미쳤다.
1665년 문과에 급제하여 1672년 동승지에 올랐으나 1674년 서인이 아들의 복지를 둘러싼 제2차 예송 논쟁에서 패하자 벼슬을 빼앗겼다. 6년 후 경신환국이 일어나자 재신임되어 예조참공조판서대사헌 등의 벼슬을 거쳤으나, 3년 만인 1689년 남해도로에 유배되어 1692년 사망하였다.
김만중은 가족이나 정치 활동으로 보는 전형적인 서인 캐…
김만중은 가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