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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아래 질문에 답하시오.
1. 정약용은 개혁적 사상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나서도 이러한 주장은 유효하다고 생각합니까 (공백포함 540자)
정약용은 정치를 하던 당시는 정조치세로, 조선 후기에 해당하던 시절이다. 정약용은 정치를 하면서 조선이 안고 있던 문제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그는 조선을 개혁하려면 불로소득을 없애야하고 이를 위해선 모든 사람이 일을 해야 함을 주장했다.
정약용은 몰락 양반들은 양반이라는 허울에 빠져 놀고먹고 있을 것이 아니라 원예나 양잠, 인삼 같이 크게 힘들이지 않고 기를 수 있는 특수 작물들을 제배하라고 주장했다. 또한 농민들에게는 어업과 축산업을 비롯한 다양한 일거리를 제시했다. 나아가 노비에게도 노비의 일이 아닌 공정한 일자리를 제공해야 함을 강조하면서 양반과 사농공상, 천민 할 것 없이 모든 백성들이 일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이 주장이야말로 정약용의 개혁안의 골자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정약용의 개혁 사상은 당시로서는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조선은 19세에 중엽, 일본이 메이지 유신으로 대혁신을 이루었던 반면, 조선은 쇄국정책으로 국제화의 물결을 막아 망국의 길로 접어든 것을 미루어보면, 정약용 혁신은 필히 이루어져야 했던 것이었다.
2. 정약용의 편지 가운데 가장 감동적이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이 있었다면 어떤 것이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백포함 529자)
일본과 중국의 학문 경향을 예의 주시했다는 것은 당시 지식인으로서 정약용이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특히, 일본의 성장을 무조건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지 않고, 그들이 과거에 몽매했지만 중국과의 교역…
3. 정약용의 편지 가운데 가장 어이없거나 답답하거나 동의할 수 없었던 내용은 어떤 것이었으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2가지 이상) (공백포함 534자)
4. 정약용을 비롯한 유학자들은 자신들을 독서인이라고 부르며,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학문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날 학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