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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삼국유사
저자 일연()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은 터라 『삼국사기』와 더불어 『삼국유사』 또한 읽은 적이 있다. 앞서 언급한 서적들을 읽기 전에 사마천의 『사기』를 먼저 접한 이유에서였을까 사건과 인물을 개별적으로 기술하는 기전체로 서술된 사기의 방식을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많이 따라 했다는 느낌을 받은 기억이 난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두 책을 읽어보니 과거에는 느낄 수 없었던 사기와는 다른 한반도 특유의 정서와 역사적 사관()을 책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따라서 필자는 두 서적 중 삼국유사를 다시 읽으면서, 특히 기억에 남았던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감상을 중점으로 글을 전개해 나가고자한다.
1. 신라 통일의 기초를 닦은 진흥왕
신라의 제24대 왕인 진흥왕은 15세의 나이로 즉위했다. 나이가 어려 태후가 섭정을 했으나 왕의 총명함이 극에 달하여 연호를 바꾸던 해에 진흥왕은 친정()을 행하게 되었다.
연호를 바꾸고 3년 뒤, 백제가 영토를 침범하여 많은 수의 남녀와 말을 끌고 갔으니, 이는 나제동맹의 파기로 인해 백제가 신라에게 앙심을 품어 일어난 일이었다. 백제가 신라를 침공하기 전, 즉 나제동맹이 유효하던 시절에 두 나라는 고구려의 영토를 침공하여 북진하려 했으나 진흥왕은 “하늘이 고구려를 미워하지 않는데 내가 어찌 고구려를 미워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며 북진을 거부했다. 이에 감동한 고구려는 신라와 평화롭게 지냈다. 이에 앙심을 품은 백제는 신라를 원망하게 되었고 이는 백제의 신라 침공으로 이어진다. 이로 인해 나제동맹은 완전히 결렬되고 두 나라는 대치 상태에 이르게 된다.
진흥왕의 이러한 외교 정책은 당시로서는 신라의 성장에 필수 불가결한 것이었다. 당시 삼국지 정족지세()로 힘의 균형을 이루던 시기에, 한강 유역을 누가 차지하느냐…
2. 신라 통일의 주역, 진평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