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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서평)
새롭게 쓴 한국 독립운동사 강의를 읽고
저자 장석흥
1867년, 세력이 약해져 가던 도쿠가와 막부, 즉 에도막부는 대정봉환()을 통해 천황에게 국가통치권을 위임한다. 이듬해 1868년,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천황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국가체제를 이루면서 근대국가로 발돋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는 조선과 일본의 관계에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메이지 정권은 조선을 멸시하는 시각으로 바라보며 일명 정한론이라고 하는 제국주의적 침략의 야욕을 드러내어 번번이 조선을 위협했으나 정한론을 제기하던 메이지 정권의 매파 세력이 실각됨에 따라 사태는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쇄국정책을 고수하던 흥선대원군이 1873년에 실각하고 고종친정이 시작되면서 개화파가 집권하자 두 나라의 관계는 미묘한 기류에 휩쓸리게 된다.
1874년, 조선과 일본은 국교 정상화 문제를 논의했지만 이 논의가 실패로 돌아가자 이듬해 1875년에 일본은 대조선 무력 개항 정책의 일환으로 군함 운요호 등 3척을 부산항으로 보내 무력 점거하였고 나아가 운요호를 서해로 이동시켜 강화도 해안에 정박하게 하여 영종도 일대에서 살상과 노략질을 자행하였다. 이는, 1853년, 미국의 쿠로후네(黒)가 일본을 강제로 문호 개방을 시킬 때 그대로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이러한 무력 개방을 그대로 학습하여 자신들이 미국에게 받은 상처를 그대로 조선에게 돌려주었던 방식은 당시의 일본이 얼마나 제국주의의 야욕에 빠져있음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일본은 조선과 일본이 맺게 될 조약의 초안을 제출하면서 조약 체결이 지연되면 무력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음을 통고하였고, 조선은 1876년 2월, 강화도 조약 또는 병자수호조약이라고도 하는 조일 조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로써 임진왜란에 이은 일본의 2차 한반도 침략의 통로가 열린 것이다.
강화도는 서해 연안의 요충지로 고려시대에는 지상군이 강했던 몽골군의 접근을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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