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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의 발생원인
1997년 11월 대한민국을 부도 직전까지 몰고간 사건
imf 는 이전 어떠한 경제위기보다도 심각한 문제였으며 이때까지 대한민국은 최고의 경제 호황기라는 소리를 들을정도로 상황이 매우 좋았었다.
심지어 일본경제를 뛰어넘을 거라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대한민국 경제의 주력이었던 수출이 점점 줄어들었으며.
imf 발생전 임금체불 내역이 상당했다.
97년 12월 800~900원대인 환율은 빠른시간내 1900원까지 올랐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의 대기업이 줄줄이 도산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IMF에 구제금융 요청
왜 발생했을까
한국은 고정환율제를 선택했었다.
이는 한국이 수출증대를 위해 수출가격을 낮출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환율을 높게 책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영삼정부는 환율을 반대로 하락했다 이유는 OECD에 가입하기 위해서였다
OECD 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국민소득을 만달러로 유지할 필요가 있었고 원화가치의 고평가를 유지하기 위해 환율시장에 개입하여 다량의 외화를 시중에 방출했고 이로 인해 외환보유고가 많이 줄었다.
당시 한국에 대한 투자는 일본에서 가장 많았고, 이 소식을 들은 일본인들은 채권을 회수했고 다른 국가역시 채권회수를 하면서 우리나라의 달러가 줄었다.
또한 한국은행은 보유외환을 즉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으로 보유하지 않고 이를 시중은행에 예치해두었다. 시중은행역시 동일하게 유지하며 외환보유고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정부에 많이 의지했다, 기업들의 부채율은 엄청나게 올랐으며 돈을 갚지 못하게 되자 이로인해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내수소비가 악화됨
학교에서는 imf가 국민들이 소비를 너무많이 했기 때문이라며 낭비벽을 얘기하지만 사실 이 사태의 이유는 정부의 시장개방에 따른 대응실패와 재벌들의 정경유착, 한국경제의 구조적문제와 투기자본의 자본유동등이 원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