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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을 읽고 나서
신점은 문서를 보자마자 통곡했다. 국상을 당해 아침저녁으로 통곡하는 것처럼 울면서 먼저 구원병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징비록의 한 대목으로 진군하는 왜군에 의해 구원병을 보내어달라고 호소하는 대목이다. TV 드라마에서도 징비록은 방영되었으며, 이 책은 정말 많은 역사적 사실과 교훈을 담고 있는 책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라는 말이 있다. 한국 및 그 외 국가들을 짓밟고 유린하고 2차 대전 때도 전쟁 국가로 악행을 일삼다 패망한 일본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과거의 교훈을 잊지 못하고 실수를 되풀이한 한국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왜군이 북진하자 평양으로 피신한 선조가 중국 요동을 향해 더욱 북쪽으로 피신을 재촉하자 서애 류성룡이 왕에게 평양에서 전쟁을 지휘할 것을 호소했다. 선조는 유성룡의 호소를 묵살하는 대신 그를 도체찰사로 임명해 알아서 전쟁을 수행하도록 했다. 선조는 왜군만큼 이탈된 민심도 두려워했다. 류성룡은 병역제도 등을 개혁해 민심을 다독이는 한편 조선과 명나라의 군사, 군량, 무기, 의병, 작전, 병참 등을 총괄하며 전쟁을 지휘했다. 그가 임진왜란이 끝난 후 낙향해 중앙정부 최고위 책임자 입장에서 전쟁 전반의 상황을 반성과 성찰로 기록한 저서가 바로 《징비록》이다.
역사의 흐름을 읽지 못한 철저한 무능으로 조선의 영토는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파견한 왜군에 의해 정유재란까지 짓밟히게 되었다.
‘계사년 10월, 거가가 환도하니 불타고 남은 것들만이 성안에 가득하고, 거기에 더해 전염병과 기근으로 죽은 자들이 길에 겹쳐 있으며, 동대문 밖에 쌓인 시체는 성의 높이에 맞먹을 정도였다. 그 냄새가 너무 더러워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사람들은 서로 잡아먹어, 죽은 시신이 보이면 순식간에 가르고 베어 피와 살이 낭자했다.’
먹을 게 없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을 지경이 이르렀으니 얼마나 끔찍한 장면인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상처는 …
먹을 게 없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