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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적 측면에서의 특수교육의 필요성
한국의 대외적 이미지와 한국인의 모습은 많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 역사적 면에서는 `조용한 아침의 나라`로 시작하여 `아시아 한 모퉁이의 식민지`를 거쳐 `해방과 분단, 비극의 국가, `치열한 내전의 전장`과 `첨예한 이데올로기의 대립의 땅`, `군부통치와 민주항쟁의 대결장` 등, 한국을 보는 패러다임도 다양했다.
경제적 측면 역시 `낙후된 식민지 경제`로 시작해서 `원조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는 나라로, `후진국 경제발전의 우등생‘에서 `개발도상국 경제발전의 모범생`을 거쳐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나라`로 한때 주목을 받는 위치까지 발돋움했었다.
그러나 가장 좋은 여건에서 출범한 노태우 정권, 그리고 3당 통합의 깜짝쇼를 연출하며 문민정부를 내세웠던 YS 정권 기간 동안 11명의 경제부총리를 임무 교대시켰으니 안정적인 경제정책도, 세계 경제의 동향 파악도 모두 한계가 있었을 것이며, 외국 언론들의 비판적 충고가 안중에 들어올 리가 없었을 것이다.
외국에서는 우리의 실상을 손금 들여다보듯 하면서 "한국 국민들이 반환점을 돌기도 전에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다"(워싱턴 포스트, 1989. 9)고 했고, "한국은 이제 아시아의 용이 아니라 한 마리의 지렁이로 전락했다"(프랑스 피가로, 1989. 11)고 했으며, 같은 시기 아사히신문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아에라(AERA)`는 "한강변의 기적은 결국 종이 호랑이였음이 판명됐다"고 조롱을 했다.
이 같은 외국의 비판과 충고를 외면한 채 외국원조, 잼버리 대회, 빈번한 국제회의와 국제대회의 유치, 평화상 시상이니 하면서 지속적으로 흥청거리며 잔칫상만 벌렸고, 매스컴은 88올림픽의 매달 수상 장면만 재방영하면서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라는 최면 …
1991년도부터는 외국의 비판이 진일보하여 "패 한국인들은 자국의 경쟁력의 허약함에 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