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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를 가든 그리스의 대지는 인생의 모진 풍파를 견디고 이겨내느라 기운을 다 써버린 사람을 떠올리게 했다.
아테네 여행자들이 무턱대고 아크로폴리스부터 찾는 것은 이런 불안감(아테네 하면 떠오르는 것들, 기대한 것들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기 때문에)을 얼른 해소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아테네는 괜찮은 동네에 있는 역사 전문 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크지 않아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둘러볼 수 있고, 주변의 특색 있는 카페와 가성비 좋은 식당들에서 자잘한 즐거움을 맛볼 수도 있다.
지하궁전에는 300개가 넘는 돌기둥이 잘 훈련 받은 군인들처럼 오와 열을 반듯하게 맞추어 천장을 받치고 있다. 국제 규격 축구장보다 큰 지하 공간의 이동로를 걸으며 조명등 빛이 천장과 돌기둥과 수면에 일렁이는 것을 보고 있자니 세상이 아닌 곳에 온 것 같았다. 내가 영화 감독이라면 촬영을 하고 싶었을 테고, 전시 기획 전문가라면 딱 맞는 이벤트를 생각해냈을지도 모르겠다. 거기서 실제로 영화를 찍기도 하고 이스탄불 예술 비엔날레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니, 나만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던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