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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오랑과 세오녀를 읽고나서
우리나라에 전해 내려오는 전설. 현재 전해지는 버전은 삼국유사에 실려있는 것이다. 무대가 되는 곳은 경상북도 포항시 호미곶 일대이며, 호미곶에 가면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의 동상이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신라 어느 바닷가에서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남편의 이름은 연오랑이고, 부인의 이름은 세오녀이다. 연오랑은 바다로 가서 고기잡이를 하고, 세오녀는 집에서 옷감을 짠다. 어느 날 연오랑이 고기잡이가 잘 안된다며 바위에 앉아있는데 바위가 움직여 일본으로 가게 되어서 연오랑은 왕이 되고, 세오녀는 연오랑이 앉았던 바위에 앉아서 연오랑을 기다리는데 또 바위가 움직여 세오녀도 일본의 왕비가 된다. 그런데 그 때 신라는 해와 달이 없어져 연오랑과 세오녀에게 가서 세오녀가 짠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 신라에 다시 해와 달이 와서 다시 밝아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들이 일본에 가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로 해석된다고 한다. 당시 신라 조정에서는 여러 가지 혼란이 있었다. 정치적으로도 문제가 많이 있었고, 각종 천재지변도 있었다. 설화에서 해가 빛을 잃었다고 하며 언급되는 일식도 아달라왕 때 실제로 있었다. 결국 제 8대 국왕인 아달라 이사금 사후에는 박혁거세계 박씨는 아달라 이사금의 머나먼 자손이자 김씨 헌강왕의 사위인 박경휘가 제 53대 신덕왕으로서 다시 즉위할 때까지 728년 동안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된다.
이와 연관된 권력 투쟁에서 패배한 신라 귀족이 해와 달의 정기로 상징되는 귀중한 무언가를 갖고 일본으로 망명을 한 일이 이 설화의 배경이 되지 않았나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일본에 도착해서 일본에서 신으로 추앙받게 된 것으로 보아 신라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망명이나 이주를 선택한 것이 신라에게도 타격이었는지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고 표현할 정도로. 그러면 이들이 왜 떠났고, 그로 인해 왜 신라는 해와달을 잃었다고 했을까
…
뒤흔들었다. 왜냐하면 아직 석씨가문의 힘은 강했고, 그 힘의 배경은 제철기술이었다. 피부로 느낄 만큼 전쟁의 기운이 감돌고 있는 삼국에서 제철기술자들의 이탈은 신라를 대혼란에 빠지게 했다. `이러다 전쟁이 나면 누가 무기를 만들지` 소문은 빠르게 경주를 훑고 지나갔고, 사태는 겉잡을 수 없었다. 붙는 불에 기름을 붓듯이 때마침 일식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모두가 해와 달이 뜨는 곳에 사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망명으로 인한 저주로 여겼다.
이쯤 박씨가문은 영광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대는 철기시대, 즉 정복전쟁의 시대였으니까요. 고대국가로 가는 유일한 티켓은 우수한 철기와 강력한 군대를 가진 나라에게만 주어졌다. 농업을 기반으로 한 박씨가문에게 이것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석씨-김씨 연합이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실력과 기반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전통사회의 영향력을 당해낼 수는 없는 법이었지요. 바로 이때 사건이 터졌다. 연오와 세오의 이탈소식과 일식이 온 신라를 뒤숭숭하게 한 것입니다. 석씨-김씨 연합가문은 이것을 하늘의 준 기회라고 여겼고, 결코 놓치지 않았다.
이쯤되니 `사람을 보내서 그들을 돌아오도록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력한 청원이 빗발쳤다. 아달라 이사금으로서는 매우 난감했지만 사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당연히 연오과 세오 집단은 귀국을 거부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사람들, 온화한 날씨, 지천으로 널린 철광석이 반기는 곳이었으니 누가 돌아가 다시 힘든 권력투쟁에 참가하려고 할까 이 사건이 있은 후 경주의 민심은 박씨가문에게서 돌아섰다. 다시 벌어진 박씨가문과 석씨가문의 정치경쟁에서 왕으로 추대된 사람은 석씨가문을 아버지로 하고 김씨가문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난 벌휴였다. 아달라 이사금을 끝으로 박씨가문의 왕위계승은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