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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RT
김승민
조선시대 의관 탐구
나는 드라마 허준에 열광했었던 어린 시절이 생각나 의사에 대해 글을 쓸려고 한다. 드라마 허준에서는 의사가 현대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달라보였고 조선시대의 의사들을 살펴볼수 있어 좋았다. 지금 우리나라 현대사회에서 의사는 각광을 받고있는 직종이다. 의사는 년봉 수억원을 벌어들이는 직업으로 한번 의사가 되면 먹고 사는 것이 보장되는 경우가 많다. 요새처럼 취직이 힘든 시기에 많은 인기를 얻어 의사를 양성하는 의과대학으로 우수학생들이 몰려 항상 수능 때마다 공부를 잘하는 수재들이 의과대학에 들어간다. 여자들이 바라는 가상의 배우자직업 1위가 의사였었다. 지금 이렇게 인기를 받고 있는 의사들이 조선시대에는 어떻했을까
조선시대에는 의관들을 뽑는 의과가 있었다. 보통 의과는 양반의 서자나 중인 계층이 지원하였다. 중인신분이란 기술관 및 그들의 일정범위의 가계성원을 지칭한다. 기술관이란 잡학지식을 바탕으로 중앙관청의 특정부서에서 일하는 관리를 말하는데 역관(譯官), 의관(醫官), 음양관(陰陽官), 산관(算官), 율관(律官), 화원(畵員) 등이다. 이들은 모두 잡과 시험이나 취재를 거쳐서 뽑힌 기술관원들로서 모두 정식 관리이다. 그중 역관, 의관 등은 조선 초기에 양반관료의 일원이었으나 점차 양반관료와 구분되어 중인이라는 신분층을 구성하게 된다.
의원을 비롯한 중인의 특징은 선조들의 직업을 대를 이어 종사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기술관직이 비록 일정한 차별을 받았지만 그 나름대로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와 해택을 누리는 이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술관의 상층인 의관들의 일부는 국왕의 진료를 담당한다는 특수성으로 인해 정치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일반 진료 활동으로 돈과 토지를 벌어들일 수 있었다.
조선의 역대의 국왕들은 항상 의술에 관심을 두고 의사를 중요하게 여겼다. 국…
의감 또는 각지방 관청에 의학을 배우는 학생으로 입학하여 일정정도의 교육을 받았다. 이러한 의학생 중에서 일정한 수준에 이르는 자는 매년 6월과 12월에 혜민서가 예조와 협조하여 시행하는 의사선발시험인 녹시를 치를 수 있었고, 이 시험에 합격하면 나라의 월급을 받는 구료, 심약, 약방 등의 의사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승진하려면 고급 의관 등용 시험을 치러야 했다. 의관 등용 시험은 예조가 전의감과 협조하여 3년마다 시행되었다. 이 시험은 초시에 18명, 복시에 9명을 선발하였는데 시험은 의학입문 같은 암송시험과 필기시험으로 중국 의학서에 관한 지식을 물었다. 합격자 중 1등은 종 8품, 2등은 정9품, 3등은 종9품에 임명되었다.
의료사업은 나라의 중요한 사회정책으로 조선초기부터 중요시되어 여러 의료기관이 설립되었다. 왕실과 종친, 전직, 현직 고위관리들을 위한 내의원(內醫院)과 관리의 치료와 왕실 약재공급을 위한 시설 전의감(典醫監), 그리고 일반백성들을 치료하기 위한 혜민서(惠民署), 전염병 치료와 빈민구재기관인 활인서(活人署)를 설치하였다. 그런데 활인서는 한양지역안의 사람들을 외부지방의 환자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옛날의 지도를 통해 보아도 동서활인서가 한양성밖에 위치하고 있는데 결국 한양성밖의 백성보다 한양성안의 왕실과 관료의 건강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양반지배관료층의 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혜민서도 의관들의 각종 비리와 예산의 부족으로 인해 병자들의 치료가 자주 중단되었다. 물론 각종 질병과 전염병을 치료하고 방지 하는 데에 전혀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임진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관리들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일반 백성들은 외면되는 상황일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은 민간요법이나 무당을 통한 주술적 치료를 받았다. 그렇지만 조선중기 이후 취약한 대민 의료정책은 각종 의서의 편찬과 의원 수의 증가, 의료지식의 확대를 통한 민간의사층의 성장으로 어느 정도 극복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