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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라리스 랩소디를 읽고나서
폴라리스 랩소디는 내가 지금까지 읽은 판타지소설 중에서 문학성이 가장 뛰어난 판타지소설에 속한다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는 ´더 로그´ 같은 소설도 인간 내면의 세계에 대한 작가의 필력이나 세계관에 대한 재해석 능력은 결코 폴라리스 랩소디의 상대가 안된다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문학성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일수도 있지만.) 소설 속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복수´와 ´자유´라는 키워드. 그리고 그 둘을 대표하는 키 드레이번과 오스발이라는 두 캐릭터의 대립. 그리고 중간에 꼬여있는 데스필드, 파킨슨 신부. 이런 어려운 단어와 복잡한 인간관계가 많이 등장하면 문학성이 뛰어난 소설이냐고 어떤 친구가 말한 적이 있었다. 물론, 어려운 말 많이 나온다고 소설의 질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가지 알아두어야 할 것은, 소설을 읽을 때 지루함을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십중팔구는 작가의 정신 수준을 그 독자가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거다. 폴라리스 랩소디에서 파킨슨 신부의 ´주님은 인간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지만 인간은 주님의 한 부분조차도 이해하기 힘들다…
언제나 답을 구하러 돌아다니며 자신은 결코 완벽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한다. 인과율이라는 한계에 얽매인 상태로서 인간은 결코 완벽한 존재가 될 수 없지만, 한계에서 벗어난 ´자유´를 얻게 된 인간들은 완벽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이들은 결국 한계를 벗어나고자 노력하게 되며, 이것이 기존의 사상인 복수와 새로이 도래하는 사상인 자유의 대립으로 나타나게 된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대립의 결과를 밝히지 않고 결말을 내버려서, 독자들에게 답을 내주기를 회피한다. 미래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으니 모든 것은 자라나는 너희들에게 달려있다는 뜻인지, 기존의 사상과 새로운 사상의 대립은 결코 끝날 수 없다는 뜻인지는 모르겠다. 우리 인간들이 자유라고 믿는 것이 정말 진정한 자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