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미동 사람들을 읽고
원미동 사람들은 양귀자 작가님의 연작소설집이다. 이 책에는 11가지의 신기하고 독특한 하지만 너무 평범해서 이상할 정도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사실 소설이라 함은 약간 인위적인 냄새가 풍기기 마련인데 이 연작소설들은 너무 자연스럽고 일상적이라 소설이라기보다는 원미동 주민들의 일상을 기록한 것 같은, 그들이 직접 쓴 일기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느낌 때문일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내 가슴과 함께 고동치는 책의 떨림을 느꼈다.
사실 여러 이야기들을 모두 쓰기엔 양이 많고 복잡하다. 머리 아픈 걸 싫어하는 내가 만들어 낼 리는 만무하니 한 가지를 고르려고 고민하고 고민했지만 도저히 결정할 수 없었다. 사실 내 습관인 속독 때문에 정확하게 내용 이해도 못한 채 고르려고만 하니 힘들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래서 나는 내 삶과 좀더 가까운 것을 고르기로 했다. 물론 현재로부터 20년 정도 전의 사회를 다룬 소설이긴 하지만 내 가슴의 문을 두드리는 이야기가 몇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몇 가지 중 최종적으로 난 ‘마지막 땅’이라는 작품을 골라 글을 쓰기로 했다.
11개의 소설 중 3번째로 실려 있는‘마지막 땅’은 점점 도시화 되어 가는 부천에서 꿋꿋이 자신의 땅에 농사를 짓는 강노인의 이야기이다. 강노인은 주변 주민들의 불만 속에서도 꿋꿋하게 도시 한복판에서 농사를 지어가는 원미동 주민이다. 뭐 간단하게 말하자면 고집 세고 자기 주관이 매우 뚜렷한 사람이다. 아들들을 도와주자는 부인의 절규를 귓등으로 넘기면서도 농사를 지으려했지만 결국 땅을 팔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의 강노인의 행동은 그의 성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마지막 부분에서 강노인은 땅을 팔러 가다가 고추에게 물을 주려 다시 발길을 돌린다. 이런 행동은 그의 모든 모습을 대변해 주는 것이며 그가 다른 사람에게 떠밀려 가는 사람이 아님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글 속에서 주민들은 도시와는 조화롭지 않은 강노인의 밭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이들…(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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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 공원이 아닌 이름모를 잡초의 싱그러운 풀내음이 충만한 땅이 도시 속에 펼쳐져 있기를 나는 기원하고 싶지만 현실에선 이상일 뿐일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이런 생각들을 한 나는 강노인이 이상향을 추구하는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옛 향수에 젖어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고집만을 피우는 사람일수도 있고 아니면 도심 속에 한줌도 못되게 남은 농토를 지키고 싶은 일개 노인일 수도 있다. 그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든 아니면 옛 생각에 젖어 사는 사람이든 아니면 그저 내줄 것 다 내주고 마지막 자신의 자존심 같은 땅만을 지키려는 노인이든 난 그에게 싫은 소리를 할 수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가 지키고 있는 땅이 나에겐 우리집과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농업의 도시화로 화학비료와 농약이 찌든 농토들 사이에서 나홀로 무농약 재배를 하는 우리 농토나 도심 속의 두엄과 인분을 쓰는 그 농토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우리 아버지는 강노인 같은 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두 분에게 다 경의를 표한다. 활활 타오르는 도시화의 불길 속에서 꺼져가는 진정함의 불꽃을 잡고 있는 그들은 자랑스러운 분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