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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혼 고선지를 읽고
역사책에는 그가 말쑥한 용모로 무장답지 않게 수려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 사계는 그가 유완함에 늘 근심을 하였던 것 같다. 그러나 일을 처리하는 데는 영민하고 도량이 넓고 용감하여, 말 타기와 활쏘기를 잘 하였다고 한다. 일찍이 하서군에 예속되어 중급 장교로 있다가 사진교장이 되었다.
20여세가 되었을 때 아버지를 따라 안서로 갔다. 거기서 아버지가 세운 전공 덕분에 유격장군이 되었다. 그리고 곧 아버지와 같은 반열이 되었다고 하여, 구당서와 신당서에서는 모두 그를 보통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고선지는 개원 말에 이르러 병력 2,000을 거느리고 천산산맥서쪽의 달해부를 정벌한 공으로 안서부도호가 되었다가, 곧 사진도지병마사 가 되었다. 때문에 그에 관한 초기의 사적은 주목받을 만한 기록을 남기지 못하였다. 멸망한 고구려 유민으로 당나라에 들어간 고사계의 아들 고선지는, 파르마 고원과 한두쿠시 산맥을 넘나들며 72개국을 정복했다. 고선지 장군은 동양의 알렉산더라고 칭송 받는 고구려인이었다.
681년, 당나라에서는 보장왕을 불러 귀양을 보내고, 요동에 모여 살던 고구려 유민을 흩어져 살도록 하였다. 젊은 고사계는 이 때 고구려 유민들과 헤어져서 하서 지방에 살게 되었다. 하서는 만리장성 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었다. 고사계가 온갖 고생 끝에 하서군으로 들어가 당나라군사가 되었다. 이때는 이미 고구려가 멸망한 뒤였고 고사계는 이 무렵에 아들 고선지를 낳았다. 고선지는 어릴 때 몸이 몹시 약했다. 그러나 고선지는 장교가 된 아버지로부터 무예를 배웠고, 15살이 넘자 몸도 마음도 굳세어…
681년, 당나라에서는 보장왕을 불러 귀양을 보내고, 요동에 모여 살던 고구려 유민을 흩어져 살도록 하였다. 젊은 고사계는 이 때 고구려 유민들과 헤어져서 하서 지방에 살게 되었다. 하서는 만리장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