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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드우드를 보고나서
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감독은 필요 없어. 팔아 먹을 영화가 필요할 뿐이지. 에드 우드가 여장을 하는 남자(그 자신)의 이야기로 영화를 만들자 영화사 사장이 화를 내며 한 말이다. ‘글렌 혹은 글렌다’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그 내용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그 영화를 보고 성 전환 수술을 하기로 결심했다는 동료의 말이나, 자신이 여장을 즐긴다는 사실을 고백할까 하고 갈등하는 장면을 보면, 에드 우드가 그 자신이 겪고 있는 상황을 영화에 그대로 녹여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에드 우드의 작의 혹은 영화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평소에도 말버릇처럼 사실적이란 말을 즐겨한다. 또 영화 촬영 중, 덩치 큰 토르가 문을 열고 나가는 중 벽에 부딪혀 재촬영을 해야 했는데 에드는 그대로 현상하라고 말한다.
“괜찮아. 사실적이야. 토르는 매일 그 문제로 고통 받을 거야.”
여기서 우리는 문학이든 영화이든 작품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왜 쓰고, 왜 만드려 하는가 에드 우드는 만드는 영화마다 실패를 거듭했지만 영화 작업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어렴풋하게나마 느끼고 있었다. 그의 작품들은 평단에서 조금도 호의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고, 죽을 때까지 영화를 만들었던 그에겐 대표작이랄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사실에 결코 절망하지 않았고, 영화 작업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의 열정만큼은 그 어떤 위대한 예술가에 뒤지지 않았다. …
아무렇지도 않게 여장을 하고, 그 자신의 얘기를 영화 속에 그대로 옮기는 에드를 여자친구는 용납할 수 없다. `남들 다 보는 대본`을 써서 자신의 수치를 고백하려는 에드의 행동 역시 이해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화려한 여배우만이 관심사인 그녀에게 영화는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이렇게 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