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순교자를 읽고나서
1950년 6월 전쟁이 벌어졌고 그해 10월 유엔군은 북한의 수도 평양을 점령합니다. 그리고 겨울 압록강 변까지 밀고 올라갔던 국군은 중공군을 맞아 퇴각합니다. 소설 속의 주된 배경은 평양의 겨울입니다. 폭파된 건물들의 잔해가 군데군데 쌓여 있고, 폭파에 반쯤 날아가버린 교회의 종각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종이 댕그렁 거립니다. 전쟁의 폐허 속에 춥고 삭막한 북부지방의 겨울. 전쟁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 평양에서 14명의 목사들이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감금당합니다. 14명 중 12명이 처형을 당하고 2명의 목사가 살아 돌아옵니다. 12명의 목사가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그리고 살아 돌아온 2명이 어떻게 죽음을 모면할 수 있었는지, 이것을 밝히는 과정에서 주인공들은 사건의 진실과 사람들이 원하는 진실, 체제가 원하는 진실 사이를 고뇌하며 갈등에 휩싸이게 됩니다. 목사들의 처형에 관여했던 공산군 비밀경찰 한 명이 14명의 목사들에 대한 증언을 합니다.
“내가 당신네들의 그 위대한 영웅, 위대한 순교자들이 꼭 개처럼 죽어갔다는 얘길 들려 줄 수 있게 된 것이 큰 기쁨이오. 훌쩍거리며, 낑낑거리며,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자기네 신을 부정하고, 동료를 헐뜯는 꼬락서닌 보기만 해도 즐거웠어. 그들은 개처럼 죽은 거야! ..... 한 사람은 미쳐 버렸지. 난 미친놈은 쏘지 않아. ..... 한 사람은 내게 감히 대항해 온 유일한 친구였어. .... 난 내게 침을 뱉을 수 있는 자를 존경해. 그래서 그 자만은 쏘지 않았던 거야! “
육군 정치 정보국 소석인 이대위는 전쟁이 나기 전에는 대학에서 문화사 시간 강사였습니다. 그는 진실을 밝힐 것을 강력히 주장합니다. 진실을 왜곡하여 사람들을 속이는 행동은 어떤 명분에서도 옳은 행동이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대령님, 제 주장은 진리란 그것이 그저 진리이기 때문에 밝혀지고 발표되어야 한다는 것입…
고 순교자를 원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순교자를 만들어 줍니다.
“그들은 이미 많은 고통을 당한 자들이오. 그들이 보고 싶어 하는 것을 보여주시오.”
“전쟁과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 삶의 고통이 그들의 희망과 믿음을 움켜쥐고 절망의 바다로 떠내려 보내려 하고 있소. 절망은 이 피곤한 생의 질병이오. 무의미한 고통으로 가득 찬 삶의 질병입니다. 우린 절망과 싸우지 않으면 안돼요. 그들에게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그들에게 그들의 그리스도와 그들의 유다를 주어야 합니다.”
제가 종교적인 부분들만 발췌하여 보여 드려서 이 책이 종교적인 책이라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하에 저질러지는 국가의 거창한 거짓말들에 대해서도 6.25라는 배경을 통하여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목사들의 죽음이라는 하나의 모티브를 통하여 우리의 삶 전체를 돌아보게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목적의식적으로 만들어진 무수한 정보들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 또한 정보의 생산자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정보는 과연 모두가 진실일까요 이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다면 우리는 좀더 겸손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이 소설 속에 나오는 교인들처럼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로마의 옥타비아누스는 이런 사람들의 심리를 잘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보고 싶은 현실만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통치를 하였습니다. 물론 자신은 보고싶지 않은 현실까지도 직시하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