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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생을 읽고나서
처음 바둑판을 마주한 건 초등학생 때였다. 삼급 정도 높았던 학원 오빠를 이기게 되었을 때 그만두었다. 빠르고 쉽게 이기는 수만 두고 싶은데 바둑판 머리에 앉아 느긋하게 두는 바둑이, 다른 수도 고민하라고 말하는 사범님이 싫었다. 기보를 보면서 복기하는 것도 지겨웠다. 몇 급 차이 나는 오빠를 이겼는데도 승급을 시켜주지 않는 사범님이 미웠다. 내가 여자고 어려서 차별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만두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두게 되었으니까.
주말이 지나니 여기저기서 TVN에서 새로 시작한 드라마 `미생` 얘기가 들린다. 바둑연구생 출신인 노스펙, 노경험의 장그래가 주인공이다. 바둑이라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세상에 막 나온 사회초년생의 이야기다. 회사에 입사하고 제일 어리숙했던 시절을 사람들은 장그래에게서 본다. 눈물과 노력의 짠맛을 드라마에서 맛본다. 어떤 사람은 못 보겠다고 말한다. 아파서. 눈물이 나서 채널을 돌렸다가 다시 장그래에게로 돌아온다.
아픈데도 계속해서 보게 되는 미생에 우리가 꿈꿔왔던 환상은 없다. 누가 봐도 멋진 근사한 남자를 만나 팔자를 고치는 판타지와 다를 바 없던 이때까지의 드라마가 아니다. 미생에는 까발려진 현실의 속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자격미달 낙하산인 장그래가 감내해야할 모욕, 경멸, 수치심이 사회의 진실이다. 그것을 감내해야 될 이유는 노력하지 않았고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받는 당연한 대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그래의 동기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인턴으로 들어왔다만, 정직원이 되기 위한 또 다른 경쟁의 시작일 뿐이다. 드라마의 원작을 보지 않은 사람들도 알 것이다. 취업이 경쟁의 끝이 아니란 것을. 이제 사회에서 치열한 생존경쟁의 막이 또다시 오른다는 것을.
자신을 탓하며 한없이 위축되는 삶. 바둑판의 한 귀라도 차지하고 싶고, 아무리 비참해도 바둑판에 오르기만 해도 행복할 것 같은 삶. 끄트머리…
자신을 탓하며 한없이 위축되는 삶. 바둑판의 한 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