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목 차
1. 케인즈 경제학의 시대적 배경
2. 케인즈의 고전학파 경제학 비판
3. 케인즈 경제학 이론
1) 불황 극복의 이론
2) 유효수요의 원리
3) 저축과 투자에 의한 소득 결정
4) 케인즈의 대 경기 순환 정책
5) IS 곡선과 LM 곡선의 도출
6) 총수요 곡선과 총공급 곡선
4. 케인즈 이론의 공과
5. 케인즈 이론의 극복
1. 케인즈 경제학의 시대적 배경
1914년에 시작하여 2천만 명 이상 사상자를 냈던 1차 세계대전은 1919년에 끝났다. 그러나 이와 때를 같이하여 찾아 든 공황으로 인해 경제학에서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대규모 실업이라는 현실 문제에 직면하여 전통적인 고전학파 이론은 그 오랜 세월 쌓았던 권위를 상실했다. 그리고 새롭게 등장한 케인즈 이론이 현실 문제를 풀 수 있는 이론으로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있었다. 그 당시 세계 최선진국이었던 영국에서는 1920년만 해도 2-3%이던 실업률이 1921년에는 그 10배가 넘는 25%로 올랐고 국민 총생산은 절반으로 줄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직장과 집을 잃었다. 그 후 10년간은 영국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이 10% 이상 가는 높은 실업률에 시달렸다. 1929부터 1933년까지의 세계 대공황 때에 이르러서…
을 과부족 없이 축적한다”고 하는 고전학파의 대표적 상표인 쎄이(Jean Baptiste Say 1776-1832)의 법칙을 부인하고, 저축이 투자보다 많아 전체적으로 과잉 저축이 생길 수 있는 경제를 케인즈는 그의 이론 안에 포용했다. 과잉 저축의 경제에서는 과잉 자본이 축적되고 축적된 과잉 자본 때문에 총수요보다 많은 잉여 생산 시설이 발생해서 일부 설비가 놀게 되는 총수요 부족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이 총수요 부족이 케인즈가 본 불황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다. 따라서 이 과잉 저축을 줄이고 부족한 수요를 메워 나가는 것이 불황 타개를 위한 케인즈의 처방책이었다. 이런 케인즈의 견해에 의하면 소비는 수요를 늘이므로 미덕이고, 저축은 수요를 줄이기 때문에 악덕이며, 정부가 공공사업을 벌이는 것도 부족한 수요를 늘이는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므로 정당한 정책으로 바뀌게 된다. 이런 케인즈의 주장은 주류 고전학파 정통 이론가들의 눈에는 정부의 시장 간섭을 정당하게 만드는 극단적일 뿐 아니라 극히 위험한 견해로 보였고, 따라서 이들은 케인즈를 이단자로 낙인찍었다. 그러나 이 이단자 케인즈의 귀에는 고전학파 지지자들이나 그 당시 영국 재무성 관료들의 “고용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는 설득의 소리는 말도 되지 않는 억지 주장으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케인즈는 “무작정 기다려 보라니 그런 이론이나 정부는 있으나마나 한 것이 아닌가 「장기적으로 볼 때 우린 모두 죽고 없다(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라고 반발했다. 1936년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1883 - 1946)는 나중에 케인지안 혁명의 기초가 된 “화폐, 이자, 고용에 관한 일반 이론”이라는 표제의 책을 출간했다. 그는 고전학파 모델 중에 중요한 몇몇 가정은 필요 없거나 단지 특수한 경우에만 적용되는 가정이어서 고전학파의 이론은 특수 이론이고 그런 가정을 전제로 하지 않는 자신의 이론은 일반 이론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많은 나라에서 상품의 재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