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거시경제학 - 케인즈 경제학 보고서
목 차
1.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경제학의 발생
2.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의 생애
3.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경제학 :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
4 .케인즈(John Maynard Keynes)의 총수요함수
5.맺음말
1.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경제학의 발생
1914년 제 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래 2천만 명 이상 사상자를 내고 1919년 전쟁은 끝이 난다. 그러나 때를 같이하여 공황이 발생하고 경제학에서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대규모 실업과 불황이라는 현실 문제에 직면하여 전통적 고전학파 이론은 오랜 세월 쌓았던 권위를 상실했다.
새로이 등장한 케인즈 이론이 이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이론으로서 사람들의 신뢰를 얻기 시작한다. 당시 세계 최선진국이던 영국에서는 1920년만 해도 2~3%던 실업률이 1921년에는 10배가 넘는 25%로 올랐고 국민 총생산은 절반으로 줄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직장과 집을 잃었다. 그 후 10년간 영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이 10% 이상의 고 실업률에 시달린다. 1929년부터 1933년까지의 세계 대공황 때에 이르러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세계 각국은 이런 실업 문제를 어떠하든지 해결하고자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 때 영국의 고전학파 이론가들은 공황 발생의 원인을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파괴된 생산 기반의 상실에서 찾고 있었다. 그래서 이들은 당장 심각한 실업 문제를 앞에 두고서도, 생산 기반이 복구돼 생산성 향상이 이루어져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원론적 주장만 펴고 있었다.
그 때 일부에서는 정부지출을 늘려 공공사업이라도 벌려서 실업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
몇몇 가정은 필요 없거나 단지 특수 상황에만 적용되는 가정이어서 고전학파의 이론은 특수 이론이고 그런 가정을 전제로 하지 않는 자신의 이론은 일반 이론이라고 했다. 그는 특히 많은 나라에서 상품의 재고가 쌓이고 실직자가 크게 늘어나는 것을 보아도 고전학파의 가정과는 달리 ‘보이지 않는 손’이 마비되어 시장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고전학파 모델에서는 단지 생산 함수와 노동 시장에서의 균형만으로 총생산이 결정된다.
그러므로 총생산은 총수요에 따라 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케인즈의 새 모델에서는 경제가 침체되어 과잉 생산 설비를 갖고 있을 때에는 총수요가 늘면 산출량도 바로 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침체기에 총수요를 늘일 수만 있으면 총생산까지 늘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 후 케인즈의 경제 정책에 근거하여 실업 퇴치라는 명분하에 TVA(Tennessee Valley Authority) 댐 건설을 비롯해 이와 유사한 거대한 공공 투자 사업이 세계 각국에서 실시되었다. 이런 정책들은 즉각적으로 효력을 발휘했다.
이렇게 해서 케인즈 경제이론은 1930년대의 실업 문제 해결에 혁혁한 저공을 거두었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1939-1945)후 세계 최강국이 된 미국을 선두로 자유진영의 모든 국가에서 경제 정책 수립에 케인즈 이론을 본격적으로 도입했고, 그 효과로 세계 경제는 장기 성장을 계속했다. 적어도 2차 대전 후 1970년대 초까지 케인지안 이론은 황금기를 맞고 있었다. 케인지안 모델은 경제학에서 유일무이한 거시 경제 모델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를 거치면서 밀튼 프리드먼을 비롯한 통화론자들의 거센 도전에 케인지안 이론은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1980년대에는 케인지안 이론에 대한 반혁명이라고까지 불리는 합리적 기대 이론이 새 고전학파라 불리는 경제학자들에 의해 주도되면서 케인지안 이론은 주류 이론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였다.
그러나 새 고전학파의 비판 내용을 상당 부문 수용한 신 케인지안들은 가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