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이 글은 조선 말엽에서 일제 중엽까지를 소위 한일합방이란 망국한(亡國恨)으로 살다 간 한 이조인의 모습과 당시의 생활상을 그 손자의 과거의 기억을 통해 상세히 서술해 낸 일종의 풍속소설이다. 그리고 이를 가장 상징적으로 형상화 해낸 것이 망국한(亡國恨)이란 글자가 새겨진 ‘珊湖 물부리’ 이다. 작중 화자에게 있어서 산호 물부리란 ‘겨울 밤 질화로에서 불씨를 찾아낸 것 같은, 이조란 한 시대를 풍겨주는 향나무와도 같은’ 존재이자 조부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그 무엇인 것이다. 그리하여 작중화자는 조부를 [이조]란 한 시대를 몽땅 싸 짊어진 듯한 즉, 조선말엽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정의 당대의 양반사회를 대표하는 존재로 본 것이다. 그러면 화자는 그 조부의 모습을 통해 드러난 당대의 양반사회를 어떻게 이해하였는가? 그것은 글 속에 나타나는 조부에 대한 아련한 동경과 경의의 시선에서 알 수 있듯이 이렇듯 변모되어 가는 세태에 밀려 결국 현실의 뒷전에 물러앉을 수밖에 없으면서도, 그 야박하게 변모되어 가는 세태를 개탄하기는 할지언정 새로운 부박(浮薄)한 세태에 동조할 것을 끝내 거부하는 한 결곡한 `이조인`의 모습을 따뜻하고 아련한 시선으로 향수하며 당시의 양반사회와 그 가치체계들에 대한 긍정적인 생각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오늘날 과연 우리는 어떠한 관점에서 이러한 양반사회와 그들의 사유체계를 바라봐야 할 것인가?’ 라는 의문이 생긴다.
그리고 분명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입장에선 이 글에서 풍기는 화자의 정서적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