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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제는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이다. feudal이란 말은 17세기에 비로소 사용하였다. 이 단어에 함축되어 있는 사회현상이 사라졌거나 급속하게 퇴화될 때였다. 이 말은 경멸적인 어휘로 불공평한 혹은 우스꽝스럽게 보였던 그 어떤 특권이나 관습에 적용되었다. 영국소설가 스물릿(smollett)은 자신의 작품
Humpry Clinker(1771)에서 이렇게 조롱했다:“괴상하다 싶은 모든 정책과 관습은, 심지어 기질까지도 거슬러 올라가면 이 사회현상에서 유래된다 ...
내 생각으로 트렁크바지와 튀긴 맥주의 사용도 봉건제도의 영향으로 보인다.“ ” 봉건제 “가 번영했으리라 생각되는 시대에도 어느 작가든 이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17,18세기의 골동품수집가들을 공정하게 평가하자면, 그들은 당대의 지배적인 정치이론과 조화를 이룰 수 없는 여러 제도의 잔존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왕권에 대한 각종 제약조건들, 개인의 공권력 소유, 부동산의 이동과 양도에 관한 이상한 법은 절대국가나 사유재산의 신성성에 대한 믿음과 부합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골치아픈 괴상한 관행들은 대개 봉(fief -라틴어로는 feodum)이란 중세시대의 제도와 연관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이런 관행들을 묶어서 봉건제란 이름으로 불렀다.
이 용법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봉은 중세 서유럽의 정치, 사회구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우리가 봉건제라 부르는 것 가운데 여러 요소가 봉이 생겨나기 이전에 존재했었다. 그 첫 번째 요소로 무장가신을 들 수 있다. 그는 개인적 합의에 따라 주군에게 복종했고 선물과 전리품을 하사하는 주군에게 충성을 받쳐야 했다. 상당히 잘 조직도니 후기로마제국과 같은 국가에서도 이런 가신들은 존재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