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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우리 민족이 처해 있던 상황은 내적, 외적,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매우 혼란 스런 상황이었다. 국가와 민족의 이익과 이념보다는 자신들의 이속을 챙기기에 바빴던 탐관오리들과 변칙적인 정치체제의 문란과 관료제도의 파탄과 수취체제의 문란으로 국가 경제의 몰락과 민생고의 가중,이에 따른 백성들의 저항이 속출되어 더욱더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이렇게 견딜 수 없는 파국적 혼란은 민중들을 자극시켜 그들에 의한 봉기,민란 화적,도적 등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정치적 혼란으과 결부되어 사회적 대혼란의 분위기를 부채질했다. 이러한 당시의 정치,경제,사회 등 제반 분야에 대한 불안과 사상적 혼란,도덕적 가치와 퇴폐화등이 민중들에게 생에 대한 절망감을 안겨다 주었고또한 위기의식을 촉발시켰고 더 나아가서는 새로운 종교에 관한 탄생을 예고 했다. 또한 기존의 종교의 타락 또한 새로운 종교의 탄생을 예고 했다.기성 종교의 타락과 부폐, 서양으로부터 천주교 유입등은 민중들의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지배층의 주 이념이었던 유교는 그 이념을 상실한 채로 오직 공리론에만 빠져서 학파,당파의 등의 파벌형성만 일삼고 명분과 권력, 명예만을 찾으려하고 있었다. 불교 역시 오래동안 서민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 섰지만 산속으로 부터의 종교 무속적 기복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속에서 우리나라의 민속 신앙사에서 거의 신화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강증산이 탄생된 것이다. 강증산이 탄생되었을 때에는개벽시대라고하는 우주사의 일대 전환기라고 할수 있으며여러 가지 문헌에 따르면 개벽시대는 천지가 성공하는 때이며 이 때는 어떠한 사상간의 갈등도 또는 문화 문명간의 대립도 없는 그 정수가 모여서 이우렂닌 한 덩어리의 세계임을 나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