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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아버지는 서로 2년 여 동안을 만나지 못했는데, 내가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 때의 아버지의 뒷모습이다. 그 해 겨울, 할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아버지마저 일자리를 잃게 되었는데, 바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힘겨운 날들이었다. 나는 북경(北京)에서 서주(徐州)로 아버지와 함께 상을 치르기 위해 집으로 급히 돌아갈 계획이었다. 서주에 도착해서 아버지를 뵙고, 안뜰 가득 난잡하게 어질러져 있는 물건들을 보니, 또 할머니가 생각나서 주르륵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금치 못했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일이 기왕 이렇게 됐으니, 너무 괴로워하지 마라. 다행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단다.”
집으로 돌아온 뒤 물건을 팔고 저당을 잡혀서 돈을 마련해 아버지는 빚을 갚았다. 그러나 또 돈을 빌려서 장례를 치렀다. 요즘 집안 상황은 매우 암담했는데, 반은 장례 때문이었고, 반은 아버지의 실직 때문이었다. 장례를 끝내고, 아버지는 일자리를 구하러 남경(南京)으로 가야 했고, 나도 북경으로 돌아가 공부를 계속해야 해서 우리는 동행하기로 했다.
남경에 도착했을 때, 친구의 권유로 시내를 구경하느라 하루를 머물렀다. 이튿날 오전 강을 건너 포구로 가서 오후에 기차를 타고 북경으로 가야 했다. 아버지는 일이 바쁘셔서 원래 나를 배웅하러 나가지 않기로 결정하셨는데, 대신 여관에 잘 아는 종업원에게 나를 배웅해서 함께 가주라고 하셨다. 아버지는 종업원에게 신신당부하시고 매우 자세히 알려주셨다. 그러나 끝내는 마음을 놓지 못하시고 종업원이 적당하지 않다고 염려하셨는지 상당히 주저하셨다. 사실 나는 그 해 이미 20살이었고, 북경을 이미 두 세 차례 왕래한 적이 있어서, 뭐 그리 대수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