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친구>는 부산이라는 특정한 지역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1973년부터 1993년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다. 이 시간과 공간의 결합을 우연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까? 영화를 만든 사람들, 특히 곽경택 감독에게는 전적으로 우연일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고향과 시대를 선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역주의로 분열된 한국의 관객들에게도 우연일까? 이 시기는 권력의 지역적 연고가 첨예한 정치적 문제가 되는 한국 사회 현실에서 경상도 지배 시대로 지칭될 수 있으며, 그 정치적 성격은 파시즘이었다. 이 시기의 이 지역에서 남성들의 우정은 자연스러운 것인데 비해 여성들의 우정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좋게 말하면 유교적 전통이 살아있고, 나쁘게 말하면 가부장제의 유산인 남성 우월주의의 구습이 뿌리깊은 이 지역은 자타가 공인하듯 `사나이`들의 고장인 것이다. 영화 속 친구들도 우정의 표시로 여자 친구와의 잠자리를 제공한다. 이 때 여자 친구 자신의 주체적 의사는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이렇게 남성에게 전적으로 예속되어 오직 순종을 미덕으로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인 운명을 강요받은 여성들에게 주체적인 관계는 거의 불가능하거나 예외적인 것일 수밖에 없겠다. 그리고 파시즘이 언제나 이와 같은 전근대적인 정신성과 결합한다는 것은 그 일반론에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우연적일 수 없는 시대적 공간적 배경은 관객들의 관심의 초점에 놓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감독의 주관적 회상, 그것도 관객의 향수를 자극하는 무조건적인 우정에 관한 개인적인 회상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놀라운 전치(轉置)와 은폐의 과정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