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우연한 기회로 빔 벤더스의 파리, 텍사스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영화가 과연 대중적이냐 아니냐는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 나름대로는 최근에 접한 대중문화중에 가장 기억에 남아 몇자 남겨본다.
거창할지 모르지만 인간에게 있어서 기억은 존재조건이다. 여기에 약간의 과장을 덧붙이자면 기억은 곧 존재를 만든다. 기억을 잃어버린 인간은 살아갈 수는 있되 곧 내가 나인가라는 문제에 봉착해 버리고 말아
의 주인공 트레비스처럼 어딘가로 자꾸만 떠나게 된다. 사실 `그` 기억이란 것은 객관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기억이 주관적인 감정과 느낌의 아우라를 이루어 `그` 기억의 주인에게 하나의 추억으로 남을 때, `그` 기억은 진가를 발휘한다. 이 때 기억의 진위여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으며 개인이 필요로 하는 것은 보편적인 기억이 아닌, 그/그녀들만의 `그` 기억들이다. 근원을 잃어버린 자, 트레비스. 그에게 있어서의 결핍이자 그를 걷게 만드는 원동력은, 바로 기억이다.
영화는 유유히 날고 있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황량한 멕시코 국경 근처 텍사스 어딘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곧 등장하는 한 지친 남자는 그렇게 유유히 걷고 있지는 못한 듯 하다. 흙바람을 뽀얗게 맞은 양복 한 벌에 구겨진 붉은 야구모자, 지나치게 큰 생수통. 그의 눈빛은 단 하나를 절실하게 찾는 것 같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자의 눈빛과도 같다. 그를 내려다 보는 독수리. 독수리를 의식하고는 생수통을 버리고 다시 카메라에게서 멀어져가는 사내. 오프닝은 독수리의 시선으로 보여지듯 사내를 보는 관점이 영화 시종일관 뚜렷하되 중립적임을 암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