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2. 서양 포르노그래피 검열의 역사
포르노그래피의 여부는 시대가 정하는 검열의 경계와 독자층과의 관계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다. 포르노그래피를 검열과 독자층이라는 면에서 볼 때, 그 역사는 19세기 이전과 이후로 크게 나눌 수 있다고 한다.
18세기는 과도기로서 ‘포르노그래피의 황금시대’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쾌락주의가 유행하였으며, 사드, 카사노바 등의 문인들은 성의 유토피아를 추구하였다. 사드의‘쥐스틴, 또는 미덕의 불행’에 대항하여 쓴 레티프 드라 브르톤의 ‘앙티 쥐스틴’등의 포르노그래피는 이 시대의 것이다. 이와 같은 포르노그래피는 19세기에 이르면서 사회문제로 대두하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18세기까지 일부 귀족과 부르주아의 전유물이던 포르노그래피가,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중산계급의 상층부에서 책을 읽을 능력과 경제력을 가지게 되자 그 검열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19세기에는 복제기술의 발달과 시장의 확대로 대량의 포르노그래피가 쏟아져 나왔으며, 사진의 발명도 급속도로 이용되어 19세기 중엽에는 포르노사진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빅토리아왕조의 영국 중산계급 사이에서 특히 포르노그래피가 번창한 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