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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건 여자건 신도이건 비신도이건, 예수가 고난을 당하는 장면이 스크린에 펼쳐지는 동안 그 모든 경계는 사라지고 없는 듯 보였다. 그 순간 관객들이 흘리는 눈물은 고통당하는 신의 아들을 위해 흘리는 종교적 눈물이 아니라 한 인간의 애처로움을 수수방관할 수 밖에 없는 어머니의 눈물이요 친구의 눈물이요 인간의 눈물이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 반(反)유대주의가 녹아 있는지 또는 종교적인 사실인지 아닌지를 가지고 영화를 평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2천년도 더 된 역사에는 `입김`이 섞일 수 밖에 없을 뿐더러 예수의 죽음이라는 사건 뒤에는 정치적 입장이 있었다는 걸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멜깁슨은 성서에 나온 내용 그대로 유대인 사제장들과 그에 동조하는 성난 군중들의 모습을 그리면서 오히려 로마의 빌라도는 예수에게 자비를 베풀고 싶어하는 고뇌에 찬 위정자로 묘사하고 있지만, `니콜라스 노토비치`에 의해 1887년에 티벳에서 발견된 `이사전(Issa傳)`에 따르면 유대인들은 끝까지 이사(예수가 인도 등지에서 활약하던 때의 이름)를 살리려고 노력했으나 빌라도의 정치적 술수에 희생된 것으로 완전히 반대의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로마가 죽였든 유대인들이 죽였든, 결국 사건의 핵심은 역사적 인간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으로 귀착되며 그것은 인간 예수가 고스란히 감내해야 했던 무시무시한 고통이요 죽음이라는 사실이다. 완전히 종교적인 입장을 배제하고 이 영화를 관람할 수는 없겠지만-특히 기독교 신자들의 경우에는 더욱-종교적인 도그마를 걷어내고 이 영화를 본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광기와 무지, 비겁함과 외면이 어떻게 한 인간을 파멸로 몰아가는지를 극사실적으로 느낄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