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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항쟁을 객관적으로 보는 논리를 펴기 전에 ‘김영명 교수’의 5·18 항쟁을 보는 시각을 알아보자. 먼저 12·12 쿠데타는 박정희 정부에서 핵심 세력이고 비호 세력이었던 핵심 집단이 박정희 정권의 몰락으로 자신들의 이권을 일을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권력욕을 가지고 일으킨 전형적이 군사 쿠데타이고, 전혀 존재할 가치가 없는 ‘잉여정권’으로 보고 있다. 물론 나도 절실히 동감한다.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집권을 위해 준비 작업을 펼친다. 최규화 정부를 무력화시키고 여론을 조작하며 저항 진압을 위해 군부대의 특수 훈련을 실시하였다. 비상계엄을 계속 실시하고 합동 수사 본부의 권한을 강화했으며 헌법 개정을 준비하였다. 80년 4월 14일에는 전두환이 합수부장 중앙정보부 부장직까지 겸하게 됨에 따라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가 되었다.
야당은 권력욕에 눈이 멀어 분열하였고 이에 따라 민주화의 길은 멀어졌다. 학생과 재야 세력도 여러 문제로 분열하여 힘을 모으지 못했다. 특히 중간 계급은 미국의 지원을 바라고 앉아 있는 웃기는 시대착오를 하고 있었다. 즉 그때까지도 세계화, 국제화가 되지 못하고 있었다.
80년 3월 28일에 결성된 서울대 학생회를 필두로 4월 초순에는 학생회 부활이 전국으로 퍼졌다. 이것을 계기로 학생운동은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평화적이었다. 그러나 5월 13일 밤 갑자기 가두 시위로 변모하였다. 강경파 학생들이 주도하였기 때문이다. 신군부는 학생들의 대규모 시위를 구실로 5월 17일 계엄 포고령 10호를 내려 계엄을 제주도만을 제외한 전국으로 확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