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태초에 사건이 있었고, 케뤼그마는 그 뒤를 따른다`(안병무). 이 말은 민중신학의 <사건> 개념이 함축하는 바를 나타내 주는 핵심구다. 여기서 <사건>은 <케뤼그마>와 대립된다. 이것은 좁게는 자유주의 신학의 귀결점이자 극복점인 불트만(Rudolf Bultmann) 신학에 대한 폐기선언이며, 넓게는 근대(modern) 서구신학의 주류적 사고에 속하는 로고센트리즘(logo-centurism)에 대한 선전포고다.
근대의 부르주아적 인간지성에 대한 무한정한 낙관주의에 기반하여, <인간지성에 의한 하나의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사건>을 재구성할 수 있으리라는 자유주의 신학적 믿음은 두 가지 점에서 문제를 노정했다. 첫째로, 제1·2차 세계대전을 상징적 계기로 하는 인간 지성의 무한한 자유가 잉태한 비극적 결과에 대해 자유주의 신학적 근대성은 결코 면죄부를 받을 수 없었다는 점이다. 둘째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까지, 그리고 1960년대에 다시 폭발한 서구 박탈계급/계층의 해방적 실천이나, 20세기 중반 이후 폭발한 제3세계의 민족적, 계급/계층적인 해방적 실천에 대해서 자유주의적 근대성은 철저히 무능했다는 점이다.
실존주의적 신학(불트만)이나 신정통주의 신학(neo-orthodoxism)은 주로 첫번째 문제에 대한 서구신학계의 반성이요 응답이었다. 이들은 실패한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 지성을 통한 사건 해석 대신에 케뤼그마를 통한 사건 해석에서 출구를 찾는다. 요컨대 신적 존재로 선포된 자에 관한 담론(케뤼그마) 중심적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즉 이들에게서 사건은 항상 <하느님이 주체가 된 하나의 총체적이고 보편적인 사건>이 된다. 실존주의 신학은 그 사건과 인간의 접촉점은 탈역사적인 실존을 통한 결단에서 일어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