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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인에게 있어서 협화음은 모든 예술에 대한 구속력을 갖는 우주조화의 청각적인 시금석 이었다. 이 확신은 이론상으로도 깊은 뿌리를 내렸을 뿐만 아니라, -이것은 오늘날에 와서는 일반적으로 부정되고 있다.-실행으로까지 옮겨 졌다. 비례 체계가 화가, 조각가, 건축가에 의해 의식적으로 응용되었다는 것을 입증함에 있어, 사람들은 이제 겨우 발견하기 시작한 비율을 마치 완전히 발견한 것으로 쉽게 착각해 버리는 것이 사실이다. 일단 학자의 손에 쥐어진 콤퍼스는 거역하지 못한다. 만일 우리가 무모한 사색의 함정에 빠져들기를 원치 않는다면, 우리는 예술가 자신들에 의한 확실한 방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가사의하게도 그것을 시도해 본 학자가 아직 아무도 없다는 사실이다. 이와 같은 방법은 신중히 조사해 보면 확실히 중요한 증거를 얻을 수가 있다. 무엇보다도 예술가가 지적한 것을 판독하여 해석하지 않으면 안되며, 하나의 예가 지금 마랗고 있는 우리의 의도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Serlio는 그의 제1서 권말에서 교희의 문에 대한 올바른 구축 방법으로서 기하학적 배열을 도해하고 있다. 그는 문이 서게될 중심 베이를 기준으로, 바닥에 평행하는 선을 그어 정방형을 만들, 대각선을 그어 밑변과의 두 각으로부터 이등변 삼각형을 만든다. 이 대각선과 삼각형의 두변 사이에서 생간 교점이 문의 높이와 폭을 결정짓는다. 이 작도는 중세 후기에 행하여진 졍방형에 의한과 거의 다르지 않는 기하학적 처리를 암시하려는 것 같다. 어떠한 경우에서도 이 기하학적 패턴은 수학적으로는 설계상 무리수의 초점을 생기게 한다. 그러나 Serlio의 예에서, 기하학적 패턴은 문의 비율을 결정하기 위해 선행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과론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