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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지통신 실시배경
1) 조선조정의 입장
대마번을 통해서 막부의 역지통신 방침이 전해지자 조선조정은 선례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해서 일본측 요청을 한 마디로 거절해버렸다. 그보다 전에 동래부사 홍문영은 막부장군 덕천가치의 사망 사실을 조정에 보고했는데, 이것을 바탕으로 1786년 10월 11일에 당시 호조판서 정일상은 통신사에 필요한 예단삼 준비에 착수해야 한다고 조정에 진언한 바 있다. 이것을 보면 당연히 선례대로 통신사가 열릴 것으로 보고 미리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때 조선측에서는 통신사가 에도에서 열릴 것으로 알고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런 상황에서 1793년에 일본으로부터 ꡐ역지통신ꡑ의 요청이 들어왔으니 조선쪽에서 그것을 거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선례에 없는 일이라 해서 조선은 역지통신의 뜻을 전하는 일본측 서계의 접수마저 단호하게 거부했다. 아마도 이것은 그동안 에도까지 성대하게 접대를 받으면서 치루어 젺던 통신사를 대마도에서 연다는 것은 격식에 크게 어긋난다는 불쾌감 때문이었겠지만, 그와 더불어 일본(특히 덕천막부)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지 신중하게 …
참고문헌
단행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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